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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치학

[세계정치론] 냉전의 종식

by trulyforyou 2022.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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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말

이 장에서는 세 가지 넓은 주제들이 다루어질 것이다. 첫 번째로 비록 우리는 1989년 이후를 '탈냉전기'라고 하지만 냉전이 남긴 많은 문제와 기회 그리고 냉전 종식 과정으로 현재 세계가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미국의 패권에 대한 것이다. 탈냉전기의 국제체제에서 눈에 띄는 특징 가운데 하나가 새로워진 미국의 패권이고 어떤 사람들은 '새로운 미 제국'이라고 일컫기도 하지만 이러한 새로운 힘의 위치는 그에 상응하는 일관된 대외 정책으로 이어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세 번째 주제는 테러리즘 핵무기 확산, 중동의 불안정 확대처럼 현상 유지에 대한 도전들이 있는데도 이러한 도전들이 지구화를 추진하는 동력에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듯해 보인다는 점이다. 하지만 세계금융 시스템을 산산조각 내면서 장기적인 문제들을 남긴 2009년의 경제위기는 지구화를 위협할지도 모른다. 1930년대 이후 자본주의가 겪은 첫 번째 대위기의 장기적인 결과는 두고 봐야 한다. 그러나 가장 긍정적인 시각을 가진 분석가들조차도 우리는 경제위기의 결과로 지정학적 전환점을 돌았으며, 세계는 지난 10년보다 앞으로 다가올 10년 동안 더욱 많은 불안에 시달려야 한다는 데에 동의한다. 우리 앞에 놀라운 시간이 놓여 있는 것이다.


| 냉전의 종식

주요 전쟁이 끝나면 평화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많은 문제가 대두된다. 1919년에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그러했다. 1945년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도 역시 이러한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발생했다. 그리고 20세기에 벌어졌던 주요 전쟁 가운데 가장 마지막 전쟁인 '냉전'이 종식된 1989년에도 이러한 현상이 다시 한번 발생했다. 그렇다면 냉전은 무엇이었고, 냉전의 종식은 어떻게 국제체제에 영향을 미쳤을까?


냉전은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물이다. 제2차 세계대전은 국제 질서가 두 개의 초강대국에 따라 나뉘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두 초강대국은 모두 어마어마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고, 각각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를 대표하는 국가였다. 이러한 경쟁 관계는 소련군이 나치에게서 해방시킨 유럽 지역에서 철수를 거부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는 순식간에 아시아와 제3세계로 확장되면서 지구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2,500만 명에 이르는 사망자, 좌절된 개발전략,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염원을 통해 제3세계에서 경쟁이 무엇을 희생시켰는지 느낄 수 있다. 한편, 다른 곳에서는 상당히 다른 결과가 도출되었다. 자본주의 강대국들 사이에서는 두 세대 동안 보지 못했던 단결과 화합을 냉전이 가져다주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1947년 이후의 양극 질서를 주어진 현실일 뿐 아니라 바람직하고 유지 가능한 질서로 보았다. 케네스 월츠 같은 현실주의자들은 새로운 국제체제에서 각각 한 초강대국에 지배받는 두 개의 일관성 있는 블록들이 있고, 두 초강대국들이 서로의 제국적 열망에 균형을 맞춘다면 다른 가능한 이론적 대안들보다도 안정과 질서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냉전은 전통적인 관점에서의 전쟁이 아니라 (실제로 소련과 미국은 직접 무력을 사용한 적대행위를 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관리된 경쟁'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이는 대체로 정책 결정자들이 그들의 관계를 어떻게 보았는지에 대한 문제이다. 실제로 많은 정책 결정자들은 (공적으로는 이야기할 수 없었지만) 사적으로는 자신들의 라이벌이 정당하게 안보에 대해 우려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는 결국 냉전이 왜 ‘차가운' 상태로 남아 있었는지를 설명해 준다. 또한 초강대국들이 냉전기의 상당 기간 동안 왜 그렇게 조심스럽게 행동했는지를 설명해 준다. 사실 전면적인 핵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고려할 때 두 초강대국이 공유했던 목표는 상대방을 (양쪽 모두 가끔 이러한 용어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파괴시키기보다는 상대방의 야망을 봉쇄함으로써 평화를 지키고자 하는 데에 가까웠다.

 

모든 체제는 규칙에 따라 움직이고, 이는 냉전기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띠라서 1989년에 이 체제가 붕괴되자 야기된 엄청난 충격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전환을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이런 전환이 평화적으로 일어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대부분의 정책 결정자들이나 학지들도 이에 대해 준비를 하고 있지 않았다. 실제로 국제정치학계의 많은 학자들은 기존 상태를 당연하게 여겼기에 이러한 대규모 격변은 상상할 수 없었고, 1989년에 일어난 사태를 이른바 '학문의 과학적 지위'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구질서가 왜 붕괴했는지를 설명하는 데에 국제정치학자들이 나중에는 많은 도움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변화보다는 지속성을 강조하고, 냉전 체제의 급작스러운 분열보다는 안정성을 강조하는 학문적 가정으로 인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정치학을 정의하는 데 도움을 주었던 현실주의의 확실성이 손상되었다는 사실을 숨길 수는 없었다. 실제로 1989년에 일어났던 사건은 1990년대 학계에서 많은 토론을 양산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점점 진영을 정비해 가면서 소련을 협상 탁자로 끌어내는 데 물질적인 요인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냉전 종식에 대해 독창적인 연구를 함으로써 부상한 구성주의자들은 1980년대 후반에 나타났던 커다란 변환은 소련과 미국의 상대적 능력 변화 때문이 아니라 고르바초프가 충돌의 논리를 붕괴시키는 새로운 사고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세계정치의 결정적인 사건에 관한 주요 토론은 이후 국제정치학자들을 갈라놓을 거대한 논쟁을 만들었다.


> 요점정리
• 냉전은 경쟁을 가정한 복잡한 관계였는데, 핵무기의 존재 때문에 실제 전쟁은 대체로 피할 수 있었다.
•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냉전이 지속되리라고 예상했으며, 평화적으로 종식되어 당황했다.
• 냉전의 종식은 국제정치학 내부에서 학문적 담론으로써 현실주의의 입지를 약화시켰으며, 구성주의가 많은 인기를 얻는 데 일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