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환되는 세계 : 지구화와 왜곡된 지구정치
세계정치 지도를 보자. 특징은 거의 200개에 이르는 깔끔하게 정의된 영토적 단위체들, 다시 말해 주권국가들로 지구 전체가 분할되어 있다는 점이다. 중세 정치를 공부하는 학자들에게 국경과 경계에 따라 구분되는 세계지도는 잘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국경이란 국가에 주권이 있는, 스스로 통치하는, 여토적으로 제한된 정치적 공동체 또는 정체라는 관념처럼 비교적 최근에 발명된 것이다. 비록 편의적인 허구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가정은 주권국가들 사이의 권력과 이익 추구라는 정통적인 국가 중심적 세계정치 개념에 의문을 던진다. 지구화를 진지하게 다루기 위해서는 우리가 세계정치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개념적으로 전환해야 할 필요가 요구된다.
| 세계질서의 베스트팔렌 헌법
1648년 베스트팔렌과 오스나브뤼크 평화조약은 근대 국가성이 확립될 수 있는 법적 기초를 마련했고, 근대 세계정치의 근본적인 규칙 또는 헌법을 확립했다. 비록 당시 교황 인노켄티우스가 베스트팔렌 합의를 "영원히 구속력 없는, 타락한, 의미 없는 것"이라고 언급했지만, 이 합의는 이후 4세기 동안 그대 세계질서의 규범적 구조 또는 골격을 형성했다. 베스트팔렌 합의의 핵심에는 유럽 통치자들 사이에 외부 간섭 없이 자기 영토를 다스릴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한다는 합의가 있었다. 시간을 거치면서 이 합의는 주권국가의 원칙으로 체계화되었다. 그러나 지구적 제국들이 붕괴한 20세기에 와서야 주권 국가성과 민족자결주의가 세계정치의 보편적인 조직 원리라는 지위를 획득했다. 교황 인노켄티우스가 바란 바와는 반대로 베스트팔렌 헌법은 그때부터 전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세계정치의 베스트팔렌 헌법
1) 영토선 : 인류는 주로 고정된 국경을 가진 배타적인 영토적 공동체로 나뉘어 있다.
2) 주권 : 국경 안에서 국가나 정부는 무조건적이면서 배타적인 최고의 정치적, 법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
3) 자율성 : 자결주의 또는 자치 원칙은 국가들의 고정된 국경이 국내 영역으로 외부 세계와 구분한다는 점에서 정치, 사회, 경제 행위의 자율적 담지자로 구성한다.
헌법은 정체 안에서 정당한 정치적 권위를 행사할 수 있는 장소와 정치권력의 권한과 한계를 알려 주는 규칙을 확립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주권국가의 원칙을 성문화, 합법화한 베스트팔렌 헌법은 근대 국가 체제로 발전했다. 그 헌법은 정당한 주권적 통치 개념과 영토선 관념을 용접시켰다. 베스트팔렌 주권은 최고의 법적, 정치적 권리를 영토적으로 한정된 국가에 위치시켰다. 주권은 한정된 영토 안에서 배타적이고 무조건적이며, 최고의 통치에 정당한 자격을 부여한다. 주권은 어떤 통치자도 다른 국가의 주권적 문제에 간섭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배타적이다. 그리고 국경 안에서 통치자가 선민들에 대해 완전한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무조건 적이다. 또한 국가 상위의 어떤 법적, 정치적 권위도 없다는 점에서 최고이다. 물론 여러 국가, 특히 약소국에서 (통치하는 정당한 권리로서) 주권은 영토 안에서 실질적인 통제를 항상 의미하지는 않는다. 크래스너가 인식했듯이 많은 국가에는 베스트팔렌 체제가 `조직된 위선'의 형식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주권은 세계정치 발전이 남긴 궤적에서 전코 그 영성 역을 근본적으로 타협하지는 않았다. 비록 국제 연합헌정과 세계인권선언이 국가 주권 자격을 정하면서 베스트팔렌 헌법의 일부 측면을 수정했지만. 주권은 세계정치의 기초적인 성악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오늘날 지구화가 베스트팔렌 적 주권국가의 개념에 근본적인 도전을 제기함으로써 세계질서를 변용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1945년에 국제연합이 창설된 이후 지구적, 지역적 제도들의 광범위한 연결망이 발전하면서 지구적 문제의 거버넌스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비정부기구들과 네트워크들의 확산과 연계되었다. 세계정부는 아직 꿈같은 생각으로 남아 있지만, 인류 공통의 문제를 다양한 영향력을 가지고 장려, 규제 또는 간섭하는 지구적 거버넌스 복합체[국가, 국제기구, 초국가 네트워크 및 기구들〈공공 · 민간 모두)]는 진화하고 있다. 지난 50년 동안 그 범위와 영향은 극적으로 확대되어 G20 런던 정상회의와 코펜하겐 기후변화 회의가 입증하듯이 그 행위들이 아주 정치화되어 가고 있다. 이렇게 진화하는 지구적 거버넌스 복합체는 지구적 규범의 재정과 실행, 초 국경 문제의 규제를 통해 공동의 목표 또는 합의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고안된 정부, 정부 간 기구, 초국적 기구 간의 공식적 · 비공식적 정치 협조를 망라한다. 이에 대한 좋은 예가 취약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국제적 노동 규약의 설립이다. 예를 들어 국제아동 노동 철폐협의회는 노동조합, 산업 연합, 인권 그룹, 정부, 법륜 전문가 및 국제노동기구의 관리 및 전문가들 같은 공공 · 민간 행위자들을 포함하는 복합적 정치의 산물이었다.
이러한 지구적 거버넌스 복합체 안에서 민간 또는 비정부기구들은 지구적 공공정책의 형성 및 집행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해 오고 있다. 국제회계표준위원회는 지구적 회계 규칙 들을 제정하고, 무디스나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 같은 주요 신용 평가 기관들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정부와 기업들의 신용 등급을 결정한다. 이는 흔히 지구적 공공 권위의 그림자 속에서 민간기구들이 지구적 경제 · 사회 문제들을 규제하는 지구적 민간 거버넌스의 일종이다. 매우 중요해지고 있는 경제 및 기술 영역에서 민간지구적 거버넌스는 국가와 다자적 기구들에서부터 비정부기구와 민간 기구들에 이르기까지 권력의 재배치를 수반한다. 지구적 거버넌스 복합체는 맹아적인 초국가적 시민사회와 공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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