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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정치론

[세계정치론] 고대 세계

by trulyforyou 2022.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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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세계

오늘날 국제사회는 주권국가들 사이의 관계를 규율하는 규범과 규칙, 관행, 제도들을 포괄한다. 이때 주권국가는 일정한 영토를 점유하고, 그 안에서 독립적인 법적 권한을 행사하는 공동체를 의미한다. 국제관계에서 불개입과 법적 평등 같은 국제사회의 핵심적인 원칙들은 주권을 확보하고 정당화하며 국가 안에서 배타적으로 법적 권한을 행사하고자 하는 공통된 이해관계를 반영한다.

초기 국제사회의 모습은 이러한 모델과는 매우 달랐다. 다른 무엇보다 오늘날 국제사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국제법상 주권 평등이 분명하게 강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는 한 강대국이 자신의 우월적인 지위를 전제하고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맺기도 했다. 이와 달리 초기 이슬람권과 중세 유럽 같은 경우에는 다양한 형태의 (칼리프나 교황 같은) 초국가적인 종교적 권위가 세속적인 상대, 일반적으로는 군주의 권위와 불안한 동거 관계에 있기도 했다. 중세 유럽의 경우에는 지역 권위체와 초국가 권위체가 복합적인 모자이크를 이루었고, 이 각각의 권위체는 다양한 권리와 독자적인 군사력을 보유했다. 이러한 지역적, 초국가적 권위체에는 봉토와 공국, 주교국, 템플러 기사단 같은 각종 기사단, 한자 동맹 같은 도시 연합이 포함된다. 

하지만 국제사회라는 용어는 이러한 사례들 모두에 적용될 수 있는데, 이 사례들에서(간헐적으로라도) 비폭력적이며 규칙과 공통가치를 특징으로 하는 정기적 상호작용이 나타나거나, 적어도 유사한 규범적 전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징은 초기 공동체들이 일정한 영토에 정착하면서 그 이전에 있었던 수렵- 채집 사회가 누렸던 것보다 훨씬 복합적인 위계적 사회질서와 다양한 경제구조, 더욱 포괄적인 종교적 신념 구조를 갖추어 나가기 시작했을 때 이미 뚜렷하게 드러났다. 우선 영토의 소유관계가 더 적극적으로 정의되고 옹호되었고, 또 필요한 경우 외부 집단에게 인정되었다. 경제가 복잡해지고 다양화됨에 따라 다른 공동체들과의 교역 관계 역시 증가하게 되고 이는 상호 간 이해와 ‘외국인’ 이 다른 공동체에 거주하거나 여행할 때 가지는 권리 같은 사안들에 관한 규칙의 필요성을 낳았다. 더 넓은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데 성공한 지배자는 자기 지위를 덜 폭력적인(따라서 더 저렴하고 안전한) 방식으로 공고화하고 정당화하는 데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외교사절과 조약, 종속적인 지위에 있는 군주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세심한 정의는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처음 등장했다. 마지막으로 원시적인 종교가 선과 악, 신의 은총과 정벌에 관한 복합적인 관념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이념 체계로 진화함에 따라 사회들 간 관계 역시 공통된 규범적 전제들을 획득하게 되었다.

원시 부족이 정착 공동체나 도시국가를 건설하는 경우 이상과 같은 과정이 반복되어 발생했다. 고대 중동의 ‘제왕들과 봉신들 사이의 조약은 경계선과 무역, 방목권, 통혼, 범죄인 인도, 국방, 한 국가의 시민이 다른 국가를 방문하거나 그 국가에 거주할 때 가지는 권리와 의무 같은 이슈들을 포함했다. 조약을 체결할 때는 각종 의식과 의전이 수행되었으며, 조약을 파기한 사람에게는 신의 징벌이 따르리라는 구절이 삽입되었다. 주로 외교사절들이 조약 협상을 담당했는데, 이들 은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외교적인 특권을 인정받지는 못했다. 이 사절들은 흔히 처벌받거나, 인질로 잡히거나, 심한 경우에는 죽임을 당했다. 하지만 고대의 조약과 마찬가지로 외교 제도에는 일종의 종교적 경건성이 깃들어 있다.

단편적으로 전해져 오는 이 시기에 쓰인 기록들에서 우리는 주요 국가들 간 관계의 규범적인 기초에 관한 증거들을 드물게나마 찾아볼 수 있다. 기원전 1300년 무렵 이집트와 히타이트 사람들 사이에 체결된 전후 조약을 예로 들어 보면, 조약 당사자들은 항구적인 평화와 무역 자유, 범죄인 인도 같은 사안들을 서약했으며, 특히 범죄인 인도 같은 경우 범죄자와 그의 가까운 친족들을 극단적으로 처벌하지 못하게 면제한다는 매우 놀라울 정도로 자비로운 단서가 부가되기도 했다. 하지만 대다수 인류가 경제적으로 간신히 생존을 이어 나갈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무자비한 생존경쟁이 지배적이었던 당시 상황에서 국제 사회적인 요소는 극히 제한된 지역에 국한되었다. 경제적인 여건이 향상되고 정착 공동체들이 국제적인 규칙의 관념에 전혀 무감각한 유목 부족의 침략에서 더욱 안전하게 됨에 따라 더 세련된 국제체제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기원전 700년 무렵부터 로마의 지배가 시작된 기원전 1세기 무렵에 이르는 시기 동안 중국과 인도, 그리스에서 이러한 국제체제가 가장 두드러지게 등장했다.

고대 중국과 인도, 그리스는 대부분의 시기 동안 여러 독립적인 정체들로 분할되어 이 정체들 사이에 격렬한 경쟁과 갈등이 일어났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일정한 문화적 통일성이 유지되었다. 그리스 같은 경우 도시국가들은 동일한 언어와 종교를 공유했고, 또 올림픽 게임이나 델포이 아폴론 신전의 신탁 같은 제도를 통해 서로 간의 결속력을 공고하게 유지했다. 그리스의 모든 도시 국가들은 자신들의 독립을 매우 소중히 여겼고, 바로 이러한 점이 페르시아 제국의 패권 추구에 맞서 단결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

물론 이 도시 국가들은 공통된 그리스 정체성을 공유하면서도 치열한 패권 경쟁을 벌였는데, 그 결과 몇 회에 걸쳐 격렬한 전면전이 발생하기도 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도시국가들이 고도로 발달한 국제사회를 이루었다고 주장하는 데 좀 더 신중한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 도시 국가들 간 관계의 다른 측면들을 살펴보면 국제사회적인 요소가 잘 확립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당시에는 초보적인 수준이기는 했지만 국제사회의 제도적 기초가 암픽티온 평의회라는 형태로 존재했다. 암픽티온 평의회는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등을 보호하고, 전쟁 기간에도 그리스 사람들이 종교의식을 준수하도록 돕는 일을 주요 임무로 하는 종교 기관이었다. 또한 전쟁 종결을 위해 제한적이나마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중재'는 특히 종교적, 전략적, 경제적 중요성을 지니는 영토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분쟁인 경우에 도시들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