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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정치론

[세계정치론] 근대 국제사회의 출현 3

by trulyforyou 2022.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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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국제사회의 출현 3

프랑스 혁명이 가져온 두 번째 효과는 다수 유럽 국가들이 혁명에 대해 보인 반응에서 찾을 수 있다. 나폴레옹이 패배한 뒤 유럽 강대국들은 중소 국가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자신들만의 클럽을 구성했다. '유럽 협조 체제'로 알려진 이러한 체제는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지속되었다. 이 체제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클럽 구성원들이 나폴레옹 전쟁 종결 시에 형성된 유럽의 세력균형 체제를 유지했고, 잠재적으로 구성원들 사이에 분열을 초래할 여지가 있는 다양한 이슈들에 관한 집단적인 결정을 이끌어 내고자 하는 목적으로 정기적인 회합을 가졌다는 데 있다. 가장 대표적인 군주국가인 오스트리아와 러시아는 협조 체제가 모든 종류의 혁명에 개입할 권리를 공식적으로 가지기를 원했다. 그런데 혁명의 위협을 가장 적게 받았던 영국은 그러한 정책이 불개입 원칙을 위반하게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 오스트리아와 러시아가 제시한 제안에 가장 강력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협조 체제의 등장은 의심할 나위 없이 18세기 국제사회의 자유방임적이고 분권화된 체제에서 더욱 잘 관리되고 위계 체제로 이행함을 의미했다. 이러한 변회는 세력균형과 외교, 국제법이라는 베스트팔렌 국제사회의 세 가지 제도적 토대에도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1814년에 주요 강대국들은 ‘실질적이고 항구적인 세력균형 체제’를 건설할 의향을 이미 공식적으로 밝혔다. 1815년에는 이러한 체재를 현실화하기 위해 유럽 지도를 세심하게 다시 그리는 작업을 시도했다. 외교적으로 가장 중요한 변화는 일반적인 관심사를 다루기 위한 회의가 더욱 빈번하게 개최되었다는 사실이다. 국제우편 제도나 전신, 위생 같은 기술적인 해결책이 요구되는 문제들을 위해서 상설 국제기구가 설립되었다. 국제법 영역에서 강대국들은 특히 영토 변경 문제와 관련하여 클라크가 정의한 ‘국제적인 변화의 정당한 절차'를 마련하기도 했다. 또한 스위스와 벨기에, 룩셈부르크 같은 나라들의 지위를 집단적으로 보장함을 목적으로 하는 조약을 체결했고, 이의 준수를 강제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기도 했다. 다양한 기술적, 경제적인 이슈에 관한 조약과 노예 제도, 전쟁 중 부상병의 처우 같은 인도주의적인 이슈와 관련된 조약들이 체결되었다. 하지만 유럽 협조체제는 유럽 대륙에 질서와 평화를 보장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반면, 다른 지역에서는 유럽 국가들이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지배함을 정당화하기 위한 메커니즘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 역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1885년에 열렸던 베를린 회의에서 열강들은 아프리카에서 식민지를 차지하려는 경쟁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예방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데 몰두하는 한편, ‘새로운 점령 행위’에 관한 규칙들을 마련하기도 했다. 아프리카에 ‘문명의 혜택’을 가져다주어야 한다는 신성한 감정은 사실상 아무 의미도 가지지 못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남과 함께 유럽 협조 체제는 급작스럽고도 항구적인 종언을 고했다. 미국과 일본 같은 새로운 강대국들이 등장했고, 인도를 비롯한 유럽의 많은 지역에서 민족 해방에 대한 요구가 점차 높아졌다. 이와 함께 기존 약소국들 역시 더 이상 강대국들의 의사에 휘둘리기를 거부하기 시작했고, 이렇게 변화된 태도는 1919년에 세계 최초의 다목적, 보편적 국제기구인 국제연맹을 설립하기 위한 토론을 벌이는 과정에서 명확하게 드러났다. 국제연맹을 설립하려는 이러한 노력은 국제사회의 핵심 규칙과 규범을 모두 포함하는 공식적인 국제기구를 세우려는 최초의 포괄적인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19세기 국제사회가 강대국들의 클럽이 주축이 된 공동패권 형태를 취했다면, 국제연맹은 이와는 두 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매우 달랐다. 첫째, 세력균형 자체가 전쟁이 일어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는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 제시한 신념에 따라 연맹은 세력균형이 아닌 집단 안보라는 원칙에 기반을 두었다. 이 집단 안보 원칙은 모든 국가들이 사전에 모든 종류의 침략 행위에 힘을 합쳐 대응하는 데 합의할 수 있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그럴 경우 어떤 잠재적인 침략자도 쉽사리 행동에 나서지 못하리라고 기대되었다. 둘째, 연맹의 회원 자격은 유럽 국가들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 모든 국가들에게로 확대되었다. 국제연맹은 모든 종류의 이슈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고도로 조직화된 국제사회를 건설하려는 야심찬 시도였다. 하지만 국제체제는 여전히 주권 원칙에 기반을 두었고, 따라서 이 체제의 안정은 주요 강대국들 간 세력 균형 유지 여부에 달려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은 국제연맹에 참여하기를 거부하면서 유럽 국제 관계에 대한 불개입 정책을 천명했다. 1930년대가 되면서 주요 강대국들 가운데 4개국, 그러니까 독일, 이탈리아, 일본, 러시아에서 극단 이념으로 무장하고 다른 강대국의 이해관계를 위협할 정도로 팽창주의적 경향을 노골화하는 정부가 들어섰다. 오직 영국과 프랑스만이 현상 유지 정책을 고수했다. 다시 말해 심각한 세력 불균형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요점 정리


•  현대 국제사회의 주요 구성 요인은 주권과 불개입 원칙, 외교 제도, 세력균형, 국제법이다. 
• 이러한 구성 요인들이 처음 등정해 온전하게 자리 잡기까지는 수 세기가 걸렸다. 그 과정에서 1648년에 체결된 베스트팔렌 평화조약은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 나폴레옹 전쟁 이후의 유럽에서는 더 효과적으로 관리되는 위계적인 국제사회가 등장한 반면, 유럽 국가들과 다른 지역의 관계는 제국적인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 국제연맹은 국제사회를 더욱 확실한 조직적 기반 위에 정초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설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