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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정치론

[세계정치론] 동아시아 : 세력 경쟁의 격전지

by trulyforyou 2022.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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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 : 세력 경쟁의 격전지

소련이 해체된 이후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이미지와 서방에 대한 러시아의 이미지를 형성시키는 데 과거 역사가 계속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 동아시아의 국제관계를 정의하는 데에도 과거가 일정한 역할을 한다. 동아시아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도 중국, 한국, 베트남에서 여러 차례 파괴적인 전쟁을 겪었으며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에서 반정부 봉기가 있었고 특히 캄보디아는 비극적이게도 혁명적 극단주의를 경험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뒤에 유럽이 겪었던 경험과 명확히 비교된다. 국제정치학자들은 그동안 이런 비교들을 많이 진행하면서 유럽이 냉전기에 새로운 자유 안보 공동체를 형성시켰던 데 비해 동아시아는 그러지 못했다고 주장해 왔다. 유럽에서는 유럽연합 형성과 북대서양조약기구 창설이 이뤄졌는데, 동아시아에는 여기에 상응하는 상황이 없었다. 그러나 이는 또한 독일이 주변 국가들과 진심으로 화해했던 데 반해 일본은 국내적인 이유 때문에 대체로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냉전의 종식도 이 다른 이슈들을 신속하게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냉전의 종식이 유럽 대륙을 극적으로 변모시킨 데 비해 동아시아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이 지역에서는 공산당이 중국, 북한 베트남 등을 여전히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고, 적어도 두 가지 미해결 영토 분쟁이 지역 안보를 계속해서 위협하고 있는데, 하나는 일본과 러시아 사이의 분쟁이고, 다른 하나는 잠재적으로 조금 더 위험한 사례로 중국과 대만 사이의 분쟁이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미국의 저명한 학자인 애런 프리드버그는 1993년에 쓴 유명한 논문에서 동아시아에 ‘평화를 위한 준비'가 되어 있기는커녕 여전히 새로운 세력 경쟁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프리드버그에 의하면 1914년에서 1945년 사이에 유럽에서 있었던 피비린내 나는 과거가 아시아의 미래가 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의견에 다른 학자들이 모두 동의하지는 않았다. 시간에 따라 이 완고한 현실주의적 시각은 일련의 비판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비판이 미래의 혼란 가능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한반도 분단이나 북한 핵 프로그램, 그리고 대만에 대한 중국의 주장을 고려해 볼 때 어떻게 그런 측면을 부정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 지역은 프리드버그가 묘사한 것처럼 화약고는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근거가 제시될 수 있다.


우선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이유는 이 지역이 이룩한 엄청난 경제적 성공이다. 성공의 원인에 대해 상당한 논쟁이 있는데 , 어떤 사람들은 그 원인을 아시아적 가치 같은 문화적인 이유에서 찾고, 다른 사람들은 저렴한 노동력과 풍부한 자본이 결합된 경제에서 찾는다. 몇몇 학자들은 신속한 경제개발을 하도록 강력한 국가가 위에서 이끄는 비자유주의적인 발전 모델 때문이라고도 한다. 또 어떤 학자들은 미국이 동아시아 상품에 시장을 개방하고 지역 안보를 쉽게 제공함으로써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이유야 어떻든 동아시아는 20세기 말 세계 경제에서 세 번째로 큰 지역이 되었는데, 세계 총생산의 25%를 담당하고 있었다.


둘째, 동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이 과거 갈등에 대해 강한 기억을 가지고 있지만, 1990년대에 역내 무역과 투자가 성장함에 따라 이는 약화되기 시작했다. 동아시아가 상당한 역사적 부담을 지고 있고, 그 가운데 일부는 정당성을 추구하는 정치 엘리트들에게 이용되기도 했지만, 경제적인 압박과 물질적인 이익이 역내 국가들을 묶어 두고 있는 듯해 보인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이 1967년이 되어서야 형성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동아시아의 경제 통합은 더디게 진행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통합이 유럽연합과 같은 효과를 형성시키지도 못했다. 하지만 1990년대에 지역주의가 발전되기 시작한 뒤부터 후퇴의 징후는 없었다.


낙관론에 대한 세 번째 이유는 일본에서 찾을 수 있다. 과거의 잘못과 잔혹 행위에 대해 분명히 사과하지 못해 이 지역에서 연성 권력의 영향력이라는 측면에서 상당한 실패를 겪고 있기는 하지만 일본의 정책이 불안정 요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반대로 1950년대에 그 유명한 평화헌법을 채택하고 핵무기 소유를 영원히 포기하면서 초기 핵확산금지조약의 강력한 지원국이 되어 평화롭게 행동함으로써 의심 많은 주변 국가들을 걱정시킬만한 행동을 보이지는 않았다. 더구나 대규모 원조와 투자를 확대하여 지역 국제관계를 개선시키는 노력을 했다. 오랜 경쟁국인 중국조차도 이런 일본의 도움을 받고 있어서 2003년까지 5,000여 개의 일본 기업이 중국 본토에서 운영되고 있었다. 


그다음은 중국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국의 부상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는데, 특히 현실주의자들은 국제무대에 강력한 국가가 새롭게 등장하게 되는 경우 평화를 위협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한다. 이들 역시 현재의 중국이 평화롭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중국이 부상하는 이상 그러한 모습이 몇 년 뒤까지 지속되지는 못할 것이다. 비관론보다는 낙관론을 방어할 근거가 많은데, 이는 중국 스스로가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평화롭게 부상하는 정책을 대체로 취하겠다고 주변 국가들을 안심시키고 있고 현실주의자들이 펼치는 주장은 잘못되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은 지역통합을 지지하고, 상당히 많은 자본을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에 투자하며, 동아시아의 다자적 제도를 방해하기 보다는 책임 있는 당사자로 행동하는 동 구체적인 정책을 보여 주었다. 분명 그 정책은 결실을 맺고 있어서 한때 회의적이었던 주변 국가들, 심지어 일본까지도 이제 중국을 위협이라기보다는 선의의 발전 수단으로 보기 시작했다.